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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온 건 돌멩이 조각이 아니라, 왕실 사당 건물 전체입니다.”
조선시대 건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무려 일본 가마쿠라 고토쿠인 사찰에서 정식 이송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관월당의 역사, 구조, 귀환 과정, 향후 복원 계획까지 정리했습니다.
1.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갔을까?
-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당시 야마이치증권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자금 대출 담보로 관월당을 넘긴 것으로 추정 - 이후 스기노는 가마쿠라 고토쿠인 사찰에 기증,
조선 왕실 사당인 관월당은 일본 땅 곳곳에서 **기도의 집(堂)**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관월당(觀月堂), 조선 왕실 사당이 돌아왔습니다.
2. 관월당, 어떤 건물이었을까?
-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 맞배지붕의 단층 목조건축물
- 궁궐 부속이 아닌 대군급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며,
단청 문양과 기와 문양 등에서 18~19세기 조선 궁궐 양식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3. 100년 만의 귀환, 어떻게 이루어졌나?
- 2019년 고토쿠인 주지 사토 다카오 교수가 귀환 의지 표명
- 공동 조사·학술연구 후 2024년 6~8월 해체
- 2025년 6월 국가유산청·재단과 일본 고토쿠인 간 양도 약정 체결
- 현재 석재·기와·목재 포함 4,982점의 부재가 국내 전통건축보관소(파주)로 이송됨
- 관월당(觀月堂), 조선 왕실 사당이 돌아왔습니다.
4. 향후 계획 & 의미
- 원위치 복원 시도: 서울 경복궁 인근 ‘순정효황후 본가 터’ 등
몇 곳 중 위치 후보를 두고 연구 중 - 전문가들은 3D 디지털스캔·기증 방식 복원 등 다양한 복원 방식을 검토 중이며,
복원이 어려운 경우 기념 전시관 수준으로 제자리 복원 가능성도 고려 중.
5. 왜 귀환이 중요한가?
- 문화재가 국외로 흩어져 있는 ‘건물 전체’로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 환수·복원 사례의 다음 단계로, 문화재 보존 방식과 한일 문화교류 논의에도 영향을 줍니다.
- 문화재 파손 위험을 줄이고, 문화유산의 역사·공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6. 마무리 정리
- 관월당은 조선 후기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정면 3칸·맞배지붕 목조건축물
- 1924년 일본으로 이동, 가마쿠라 고토쿠인 사찰에서 사용됨
- 2025년 6월 귀환, 부재 4,982점 국내 보관 중
- 원위치 복원 연구 및 문화재 복원 논의의 기준점이 될 중요한 사례입니다